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더글러스 맥아더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미국]]의 [[군인]]이자 [[정치가]]. 통칭 '''맥아더 장군'''.[* 또는 맥아더 [[원수(계급)|원수]].] 미국 역사상 매우 유명한 [[장군|장성]] 중 한 명이다. 일찍이 군인이 되어서 '''[[제1차 세계 대전]]의 [[용장]]''', '''[[제2차 세계 대전]]의 [[명장]]''' 등 20세기에 벌어진 주요한 전쟁에 모두 참전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. 집안 역시 명문 군인 가문이어서 아버지 아서 맥아더는 육군 장성으로서 필리핀의 군정 총독이기도 했다. 더글러스 맥아더는 이미 1910년~1920년 대에 국가적 영웅이었는데,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, 최연소 육군 사관학교 교장, 최연소 육군 소장, 최연소 육군 대장이자 육군 참모총장, 육군 원수까지 군의 주요지위를 거쳤으며, [[태평양 전쟁]]과 일본의 전후처리에서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였다. 또한 [[한국]]의 [[6.25 전쟁]]에서도 [[인천 상륙작전]]을 세우고 총지휘하였다. [[제2차 세계대전]] 중 [[태평양 전쟁]]에서 태평양 방면 연합군 총사령관, 육군 원수로서 지휘[* 반대로 아이젠하워는 유럽 방면 연합군 총사령관, 육군 원수로서 연합군을 지휘했다.]했으며, 우스갯소리기는 하지만 '''푸른 눈의 [[쇼군]]''' 내지는 '''백인 [[천황]]''', '''일본 [[대통령]]'''으로 불렸을 정도로 종전 이후 [[연합군 점령하 일본]]에서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.[* 사실 연합군 점령하 일본 시기 당시 맥아더의 권위와 권력은 쇼군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였다. 적어도 쇼군은 최고 권력자였지만 천황의 신하인 것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는데, 맥아더는 [[쇼와 천황]]과 같이 찍은 사진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이 천황 아래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실제로도 그랬다. 당시 덴노건 쇼군이건 결국에는 일본 내에서 일본 내의 무언가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지만 맥아더는 미국이라는 엄청난 대국을 뒤에 둔 미국의 고위인사인데다가 2차 세계대전 승전으로 미국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때, 직접적 패전국인 일본에서 절대자일 수 밖에 없었다.] 그렇기에 전후 일본 사회의 구조에는 그의 입김이 많이 남아있다. 그 때문인지 2006년 [[타임지]]가 선정한 '''60년 동안의 [[아시아]]의 영웅들''' 리스트에 [[https://web.archive.org/web/20110411004905/http://www.time.com/time/asia/2006/heroes/nb_macarthur.html|포함되기도 하였다.]][* [[제2차 세계대전]] 이후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아시아인들을 선정한 것인데, 이 리스트에서 맥아더는 [[마하트마 간디]], [[덩샤오핑]], [[아웅 산 수지]], [[리콴유]], [[코라손 아키노]] 등과 함께 [[정치인]]으로 분류되었으며 정작 [[일본]] 태생의 정치인은 리스트에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.(...)][* 전후 [[일본]]의 경제적 재건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LA 타임즈가 선정한 '[[20세기]] 경제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' 리스트에도 포함되었으며, 정치인 중에서는 [[프랭클린 루스벨트]]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다. [[https://m.mk.co.kr/news/home/view/1999/10/92929/|#]]] [[6.25 전쟁]]에서도 [[유엔군사령부|유엔군]] 총사령관으로서 [[북한군]]이 우세한 상황을 [[인천 상륙작전]]을 통해 성공적으로 반격하였으며 한국인들 사이에서 높은 인지도와 명성을 가지고 있다. 일본인들도 맥아더를 고평가하는데, 점령군의 사령관인데도 일본인들이 맥아더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본에 가혹한 벌을 내리지 않고 최대한 선처해주었으며 은퇴 이후에는 [[히로시마·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|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핵 공격]]을 "잔인했다"며 간접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.[* 다만 이 비판이 무색하게 맥아더 본인도 6.25전쟁 당시 만주지역에 핵공격을 주장했었다.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결국엔 해임당했다. 하지만 평가 항목의 핵공격 주장을 보면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은 아니였다. 어떻게보면 공개적으로 핵 얘기를 꺼내서 겁만 주는 것으로 끝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. 해임건도 이것만으로 해임사유는 아니지만 말기에 정치군인의 길을 걷다가 트루먼과 사이가 나빠져 이것으로 해임시킬 마지막 명분이 됐을 뿐이다. ] 수여받은 약장은 매우 비범하다. 약장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[[명예 훈장]]부터 시작해서 하나 받아도 가문의 영광인 [[수훈십자장]] 3회 수훈(천만에 가까운 미육군 누적 참전 병력 중 현재까지 겨우 13,000명만 수훈받았다.), 하나 받아도 베테랑 병사 취급받는 은성훈장 6회 수훈, V기장(영웅적인 행동을 한 군인에게 수여)이 달린 동성훈장 수훈, 육군 수훈복무훈장 4회 수훈, 대통령 부대 표창 6회 수훈, 대한민국 정부의 무공훈장 중 최고 등급인 태극무공훈장 수훈[* 초대 수훈자], 그 외에도 육군항공 조종사 마스터 기장, 소총, 권총 특등 사격기장까지 '''약장만''' 봐도 어마어마한 [[명장]](名將)이다. 그러나 [[정치]]적인 면에서는 문제를 노출하였다. 현역군인이 퇴역군인을 쏴죽인 [[보너스 군대]] 사건으로 엄청난 오명을 얻었으며, [[6.25 전쟁]] 당시 [[핵무기]] 사용과 [[중국]]으로의 확전(擴戰)을 반대한 군 통수권자인 [[해리 S. 트루먼]] 대통령의 명령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다가 해임되는 등, [[미군]] 역사에서 [[문민통제]](文民統制)에 역행했던 대표적 [[장군|장성]]이기도 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